2021 서울디자인페스티벌 (SDF)에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딜레마

2021 SDF에 다녀왔다. 여러 카테고리 중 가장 관심을 갖고 살펴본 부스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으로 분류된 부스였다.

최근들어 환경, 사회, 고용구조 즉 ESG는 경영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점점 중요시 여겨지는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2021년 현재 한국의 브랜드들은 어떻게 해석하여 제품에 녹여내고 있는지 살펴봤다.

프라이탁 아류는 이제 그만

프라이탁 제품군. SDF에서 지속가능 디자인 부스 5곳 중 한 곳은 프라이탁의 아류였다.

지속가능한 디자인 부스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부류는 폐 현수막이나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가방이였다. 기존 원단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업사이클링" 제품임을 한껏 드러내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하더라도 디자인, 설명, 의미 모든 분야에서 프라이탁의 아류작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프라이탁은 1993년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업사이클링의 대명사로서 언급되는 브랜드다. 그리고 지금은 2021년이고, 근 30년이 지나도록 프라이탁의 아류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업사이클링 제품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보여야하는 시기는 이미 많이 지났다. "폐 현수막으로 어쩌고 저쩌고"는 더더욱. 여기저기서 찍어내는 에코백 판촉물 만큼이나 나이브하고 재미가 없다. 그 브랜드들의 진심이 의심됨은 덤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이름의 그린워싱

에코백이 정말로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에코백은 이름과는 달리 생산시 비닐봉투보다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에코백은 비닐봉투와 달리 여러번 사용할 수 있다지만, 정말 그럴까. 온갖 기업들이 판촉물로 에코백에 자신들의 브랜드, 로고를 찍어서 내놓는다. 에코백이 정말로 "에코"하려면 수백~수천번은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디자인 페스티벌에서도 자신들의 브랜드가 왜 지속가능한지 설명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자연물을 사용 또는 버려진 폐품을 재사용 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일차원적인 브랜드들이 다소 보였다. 새로 생산하는 것보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큼에도 불구하고 (화학 약품을 이용한 세척 등) 크라프트지 포장과 녹색 계열의 디자인으로 눈속임하려는, 아니면 자신들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는 디자인이 많아보여 아쉬움이 컸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어때야 할까

지속가능한 디자인. Sustainable Design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는 타이틀은 자체로서 브랜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윤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들에게 멋진 세일즈 포인트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 업사이클링이야" 하는 디자인은 세련되지 못하기 쉽다. 세련된 디자인에는 추가적인 비용과 자원이 투입된다. 여기에서 기업의 이윤추구와 환경의 보존 사이 딜레마가 발생한다.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량을 늘리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꼭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기업으로서의 이윤을 포기할 것인가. 브랜드는 이 두 극단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한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이런 저울질을 잘해내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을 실천하고자 하는 브랜드다. 같은 메시지로 캠페인을 진행했던 스타벅스는 내가 이전에 크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다회용컵 재활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시스템의 부재로 봤고, 자신들이 그 시스템이 되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했다. 일회용품 사용이 자주 발생하는 페스티벌 현장 등에서 자신들의 인프라를 이용해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 사용을 늘려 쓰레기 배출량을 드라마틱하게 감소시키는 결과를 보였다.

디자인 측면에서 트래시버스터즈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색깔에 있다. 대부분의 에코-프렌들리 주장 브랜드들은 브랜드 컬러를 십중팔구 녹색, 나머지 1할은 파란색으로 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트래시버스터즈는 완전 반대되는 색인 주황색을 택했다. 주황색을 택한 덕분에 다른 친환경 주장 브랜드들과 차별점을 둘 수 있었고, 높아진 주목성은 덤이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지속가능한'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도 디자인으로서 작동할 수 있어야한다. 즉 다른 제품 디자인 분야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갖고 싶어야하고, 실용적이여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브랜드들과 같아보인다면, 차별성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캠페인/브랜드에 주목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힙' 해보이는 디자인을 갖추어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그 이후의 좋은 뜻들에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그래도 미래는 밝다.

과거 디자인 페스티벌에서는 지속가능한 디자인 부스에 참여한 브랜드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SDF에서는 지속가능한 디자인 부스가 꽤 의미있는 규모로 들어섰고, "지속가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도 일반 제품 디자인 부스로 나와 '지속가능성'이 디자인의 당연한 요소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앞서 말한 차별성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직 한국에 지속가능 디자인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더 지나고나면, 차별성 없고 진정성 없는 브랜드는 소멸하고 특색있고 영향력 있는 멋진 브랜드들이 한국을 대표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는 2021 SDF에서 눈에 띄었던 브랜드들이다. 앞으로도 아래 브랜드들의 발전을 지켜보면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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